[토론문] 정의로운 전환과 일하는 사람의 권리(한상균)

작성자
unioncraft
작성일
2019-10-24 15:42
조회
197

정의로운 전환과 일하는 사람의 권리

 

한상균
권유하다 대표

 

1. 정의로운 전환과 노동

“성장과 고용 이데올로기에서 삶과 노동의 이데올로기로 전환하자”는 것은 무척 반가운 주장이다. 제목보다 더 반가운 것은 정의로운 전환을 내세운 토론장에서 삶과 노동의 이야기도 함께 나누려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제의 토론에 익숙하지 않지만 선뜻 참여하겠다고 답한 이유다.

그간 이러한 토론에서 노동이 소외되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은 정의롭지 않은 것과 정의로운 것의 경계에 특별한 비중으로 내세워졌다. 갈색이 아닌 녹색일자리를 대안으로 세우며 정의롭지 않은 산업과 성장의 논리로부터 정의로운 노동의 자리를 잡아보기도 한다. 그래도 무언가 불편함을 느꼈다면, 노동을 비용이나 자원 정도로 다루는 경제학 교과서와 완전히 결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다. 여전히 소외되고 배제당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2. 노동이 아니라 노동자를 말 한다

그래서 이전의 토론과 견줄 때 또 반가운 것은 ‘노동’의 주어인 ‘노동자’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힘든 삶에 정서적으로 공감하자는 덕담 수준으로 들리지는 않는다. 양질의 일자리라는 화두를 정의로운 일자리로 전환하여 말해보려는 시도로 읽었다. 노동자가 생계를 꾸려 나가는 수단인 일자리에 대해 더 짚어볼 것이 있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노동정책은 왜 “직장 괴롭힘에도 ‘청년공제’지키려 울며 버티는 청년들”«주석1»과 같은 사태로 변질될까? 일자리의 수와 적정 비용을 계산해주는 노동경제학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이중의 갑질까지 감내해야 하는 사람들의 가중된 고통은 좌표(X축과 Y축)에 없다. 저들에게 일자리는 노동하는 사람의 자리가 아니라, 노동할 사람을 사용할 수 있는 일(고용)의 자리이다. 성장 시대의 일자리가 인간의 마지막 능력인 감정까지 팔고 있다는 분석에 화답하며, 인간의 모든 것을 빼앗는 취약한 노동조건이 어떻게 정의를 무너뜨리는지 이어가보자.

저임금·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 중에 학교예술강사 이야기를 잠깐 드리겠다. 월 100만원도 못 받는 학교예술강사에겐 4대 보험도 ‘그림의 떡’이다.«주석2» 이들의 불안한 생활은 초단시간 노동자라는 근로기준법상 신분에서 출발한다. 대법원이 학교예술강사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학교예술강사지원 사업을 전담하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고용책임을 회피하려 간접고용과 초단시간(주15시간 이내) 노동자를 차별하는 근로기준법을 이용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해 보험료를 꾸준히 납부하였지만 초단시간 노동을 강요받은 후엔 실업급여조차 받지 못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예술강사들의 삶을 정의롭게 바꾸지 못하고 어떤 예술교육이 정의로울 수 있는가?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을 노동이 만든다는 칭송을 믿는다면 말이다. 무언가 다른 세상으로의 정의로운 전환을 이야기하려면, 그래서 노동의 전환을 말하기 전에 노동하는 사람,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정의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지에 대해 따져야 한다. 학교예술강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취약한 노동조건은 심지어 정부까지 나서서 조장한다. 악덕 사업주가 좀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고 일탈하는 수준이 아니라, 법과 권력기관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적으로 빼앗기는 것은 일의 자리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의 권리와 삶이다.

 

3. 전환의 운동을 만드는 주어는 누구인가?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이하, 권유하다)는 지난 10월 9일, 창립발기인대회를 통해 정관과 활동방향을 채택하고, “일하는 사람 누구나” 권리찾기 1000일 운동을 시작하였다. ‘권유하다’는 “삶과 노동의 권리가 취약한 노동자들이 직접 소통하고 단결하는 장을 열며 모든 노동자의 존엄과 희망을 위해 운동”하는 것을 단체의 목적으로 정하였다. 대회에 직접 참여한 발기인들은 다음 네 가지를 ‘모두의 권리’로 승인하며 피켓을 들고 함께 외쳤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노조로 단결할 권리”, “스스로 노동시간을 정할 권리”와 “차별을 금지할 권리”.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하고 특별한 상황에 처한다. 권리침해는 법제도에 의해 강제력으로 관철되기도 하고, 관행과 당사자 간 합의의 모양새를 갖추기도 한다. 특히, 근로기준법의 핵심조항조차 합법적으로 박탈당한 노동자들은 일상의 불합리와 불공정, 차별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국가기관은 개인들이 당한 침해가 부당하여 구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법제도가 규정한 권리를 침해당한 것으로 입증된 자의 법률상 권리를 회복시킨다. 법제도를 만들고, 국가기관을 운영해 온 세력들이 정의롭게 변신하여 정의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이끌 것이라 기대하는 이들에게 이 글이 불편한 이유이다. 특별한 조건을 갖춘 이들만이 부여받는 법적 혜택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든 가치에 따라 누구나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이 (보편적)권리이다.

‘정의로운 전환’을 노동과 자연의 동맹을 위한 사회운동 프로젝트로 이해한다면, 먼저 사회운동이 전환해야 할 가치에 대해 말해야 한다. 신자유주의와 노동유연화가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를 어떻게 가속시키는지 많은 것을 주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한 것은 이 운동을 “누가”, “왜” 만들어갈 수 있느냐이다. 이 운동의 주어는 대체 누구인가?  

4. 보편적 권리를 향한 권유하다의 운동«주석3»

예상한 것처럼 ‘권유하다’는 권리를 빼앗긴 이들을 호명한다. ‘권유하다’는 취약한 노동조건에 처한 노동자들이 권리찾기의 가능성조차 빼앗긴 노동자들이라고 규정한다. 취약한 노동조건이 고착되고 악화되는 이유는 권리찾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 집단적 해결 모두 기대하기 어렵다. 권리찾기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노동자들은 권리찾기를 포기하게 된다. 즉, 노동현실을 규정하는 사회적 변화 없이 취약한 노동조건의 노동자들이 권리찾기에 나서기 어렵다. 또한, 권리찾기를 시도하는 노동자들이 없다면 사회적 변화도 불가능하다. 권리찾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악순환의 문제가 권리찾기의 (불)가능성이라면 이 문제를 푸는 답은 권리찾기를 가능하게 할 열쇠를 만드는 것이다. ‘권유하다 활동방향’은 주체와 운동, 의제로 나누어 세 가지 전환을 제시한다. 주체의 전환은 개인(별)과 집단(성)의 통합이다. 개별 참여와 집단 권리찾기로 권리찾기의 가능성을 만들며, 개별 가입과 집단 참여활동을 통해 단결권의 가능성을 만든다. 또한, 법적 권리구제의 한계를 넘는 당사자 권리행동으로 나아가는 운동의 전환을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동의를 만들어내는 의제의 전환으로 보편적 권리를 제시한다. 노동조합조차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자본과 권력의 강제력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저들의 강제력을 제압할 수 있는 사회적 힘, 즉 사회적 동의다. 보편적 권리는 사회적 동의의 필요조건이고, 보편적 권리를 지향해야 승리할 수많은 당사자들의 행동과 연대는 권리찾기가 가능한 사회적 힘을 만드는 선순환의 열쇠다.

그래서 ‘권유하다’의 답은 권리행동의 시작이다. 창립과 함께 “일하는 사람 누구나” 권리찾기 1000일 운동 시작했다. 권리를 빼앗긴 당사자들의 직접행동과 사회운동의 결집을 통해 일하는 사람 모두의 보편적 권리를 제기하고, 사회적 투쟁으로 전면화하고자 한다. 노동조합조차 할 수 없는 노동자들이 단결하고 행동할 권리를 사회적으로 실현하며 일하는 사람 모두의 권리찾기가 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최소한의 근로기준조차 박탈당한 노동자들의 실태와 의제를 공론화하며 당사자 권리행동에 돌입하는 것으로 1000일 운동을 시작한다. 우선, 아래로부터의 권리목록 작성을 위해 “5인 미만 사업장 사례 모음 및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권리찾기의 첫 단계로 손이 닿는 사업장부터 “근로계약서 서면교부운동”을 전개한다. 권리찾기유니온 온라인 개통과 함께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고발센터”를 운영하며 빼앗긴 권리를 함께 찾는 경험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4. 정의로운 전환과 모두의 권리

거칠게나마 이 토론문의 답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술강사들의 노동과 삶을 바꾸지 않고 정의로운 예술교육은 없다. 예술강사들의 권리는 초단시간 노동의 굴레를 씌워 차별을 조장하는 법제도를 제거하지 않고 회복되기 어렵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보편적으로 보장받아야할 권리를 함께 만들어 차별과 불공정을 금지시키지 않는다면, 정의로운 전환은 불가능하다. 성장과 파괴, 이윤과 무한 경쟁의 시스템을 멈추려면 세상의 운영원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 나눔과 공존의 가치에 따라 또 다른 나와 자유롭게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정의로운 전환의 방향은 정확하게 모두의 권리이다. 사업장 규모, 업종, 계약 형식의 차별 없이 일하는 사람 누구나 권리가 있다. 취업하지 못한 이들, 취업할 수 없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나아가 우리가 누리고, 호흡하는 자연, 세상의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 자신임을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모두의 권리’를 온전히 깨닫는 것이다.

‘권유하다’ 창립선언은 이러한 우리의 약속을 함께 만든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우리들을 만나고 연결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더 크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출발한다. 일하는 사람 모두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 속에서 세상과의 약속을 만든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운동하는 소중한 동지들과 함께 도전하고 싶다. 세상을 바꾸는 우리의 도전이 마침내 세상을 살리는 길이라는 믿음으로.

«주석1» : 한겨레신문(2019.10.20., 오연서 기자)에 실린 기사의 제목. 이해를 돕기 위해 해당 기사의 타이틀을 인용한다. 중소기업 청년노동자 장기근속 위한 ‘청년내일채움공제’. 회사는 정부지원금만 타내려고 자진 퇴사 종용. 노동자는 ‘청년공제’ 기간 채우려고 ‘갑질’ 버텨. “갑질로 퇴사하면 재가입 기회 부여해야”.
«주석2» : 매일노동뉴스(2019.4.1, 강예슬 기자)에 실린 기사의 제목. 해당 사례는 기사 본문의 내용을 참고한 것이다.
«주석3» :『권유하다 활동방향과 창립선언』(정진우, ‘현장과 광장’ 창간호)에서 일부 인용.

 
*  "한국 산업구조의 전환과 대안모색" 토론회(2019.10.23,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 토론문으로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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